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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해협을 보지 않았다

noisefilter 2026. 3. 23.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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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점에 쌓인 모래더미가 무너진 것일 뿐 — Per Bak의 SOC 이론으로 읽는 에너지 위기와 한국 증시

2026년 3월 23일, 호르무즈 봉쇄가 시작된 지 22일째다. 브렌트유는 최고 $126를 찍고 현재 $107 안팎에서 등락 중이다. 이란은 이제 IRGC 주도의 '사전심사 통과제'를 도입하며 선별적 봉쇄로 전환하고 있다. 처음의 공황은 지나갔고, 시장은 새로운 균형을 탐색하는 중이다. 지금 이 상황을 블랙스완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물리학자 Per Bak이라면 이 사태를 보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모래더미가 무너진 것뿐이다."


오늘의 팩트: 3월 23일 현재 상황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 및 군 지휘부를 타격하는 '에픽 퓨리(Epic Fury)' 작전을 단행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고, 강경파가 권력을 장악했다. 그 직후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새 최고지도자로 취임하며 호르무즈 봉쇄 지속을 천명했다.

지표 수치
현재 브렌트유 $107/배럴 (3/20 기준)
해협 통과 선박 감소율 95%
봉쇄 지속 기간 22일 (3월 23일 현재)
코스피 (3/19 마감) 5,763pt
원/달러 환율 1,500원선 돌파

현재 이란은 인도·파키스탄·중국·이라크·말레이시아 등과 개별 협상 중이며, IRGC 심사를 통과한 선박만 선별 통과를 허용하는 구조로 전환 중이다. 봉쇄는 완전해제도, 완전지속도 아닌 제3의 국면 — 이란이 통제권을 유지한 채 에너지를 외교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구조 — 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 코스피는 3월 9일 서킷브레이커 발동 이후 5,763포인트까지 밀렸다가, 3월 18일 반도체주 급등(삼성전자 +7.53%, SK하이닉스 +8.87%)으로 일시 반등했다. 그러나 3월 19일 다시 2.73% 하락. 방산·정유주 강세 / 반도체·소비재 약세의 구도는 유지되고 있다.


오늘의 렌즈: Per Bak의 자기조직화 임계현상 (SOC)

덴마크 물리학자 Per Bak(1948–2002)은 1987년 동료 Tang, Wiesenfeld와 함께 SOC(Self-Organized Criticality) 이론을 발표했다. 핵심은 간단하다.

모래를 한 알씩 쌓으면, 모래더미는 스스로 어떤 임계 경사각에 도달한다. 이 상태에서 모래 한 알이 더 추가되면 —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 눈사태가 발생한다. 문제는 어느 한 알이 대형 사태를 일으킬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

더 중요한 점은: 모래더미는 외부 충격이 없어도 스스로 임계 상태로 진화한다. 시스템은 능동적으로 자신을 위기의 경계선으로 밀어넣는다. Bak은 이것이 단순히 물리 법칙이 아니라, 금융시장·지진·생태계·신경망에 모두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왜 이것은 블랙스완이 아닌가

탈레브의 블랙스완은 예측 불가능하고, 발생 후에야 설명되며, 극단적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다. 그러나 호르무즈 봉쇄는 수십 년간 반복적으로 경고된 사건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2020년대 내내 '호르무즈 봉쇄 시나리오'를 공식 리스크로 게재했다. 워게임에서 수없이 시뮬레이션됐다. 분석가들은 이것이 가능성이 낮은 것이 아니라, 언제의 문제라고 말했다.

Per Bak의 언어로 말하자면: 이란-미국 긴장이라는 모래더미는 2020년대를 지나며 임계점에 다가가고 있었다. 2025년 6월의 첫 번째 충돌, 미국의 최대압박 캠페인,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인근 공습들 — 모두 모래 한 알씩이 쌓이는 과정이었다. 2026년 2월 28일의 공습은 단지 모래더미를 임계점에서 넘어뜨린 마지막 한 알이었을 뿐이다.

"The sand pile doesn't care which grain finally causes the avalanche. The system was ready to fall regardless."
— Per Bak, How Nature Works, 1996


호르무즈 위기의 SOC 구조: 3단계 해부

Phase 1 / 응력 축적 (2020–2026.02)

시스템이 임계점으로 자기 조직화하는 단계. 미국의 최대압박 캠페인, 이란 핵 프로그램 가속, 이스라엘의 이란 자산 타격, 이란 shadow fleet 확대, 홍해 후티 공격 선례화 — 이 모든 사건들은 시스템 내부의 응력(stress)을 축적했다. 표면적으로 시장은 이를 "관리 가능한 리스크"로 처리했다. 바로 모래더미가 아직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Phase 2 / 눈사태 (2026.02.28–03.10)

임계점 붕괴 및 연쇄 반응. 에픽 퓨리 작전 → 이란 최고지도자 사망 → 강경파 집권 → 3월 1일 봉쇄 선언 → 보험사 언더라이팅 거부 → 선박 발길 끊김(교통량 95% 감소) → 브렌트유 $126 → 코스피 서킷브레이커 → 원화 1,500원 붕괴. SOC의 전형적 눈사태다. 각 노드가 다음 노드를 건드리는 연쇄 붕괴. 개별 원인으로 설명하면 답이 없다 — 시스템 전체가 임계 상태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Phase 3 / 재조직화 (2026.03.11–현재)

새로운 임계 균형 탐색. 모래더미는 무너진 후 새로운 경사각을 찾는다. 이란의 선별적 심사제, 희망봉 우회 항로 정착, 미국의 기뢰 제거 작전, 사우디의 동서 파이프라인 증산. 각국은 새로운 에너지 공급 네트워크를 구성 중이다. 시스템은 붕괴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새로운 임계점에서 재조직화된다.


이란의 전략: '저렴한 방법'으로 시스템 임계화

가장 놀라운 점은 이란이 해군 봉쇄 없이, 기뢰 없이, 단지 드론 몇 발로 세계 원유 시장의 20%를 마비시켰다는 것이다. 이것도 SOC로 설명된다.

글로벌 해운 시스템은 이미 임계 상태에 있었다. 보험사들은 전쟁리스크 프리미엄을 수년간 축적했고, 선사들은 수익성 한계선에서 운영 중이었다. 이란은 이 시스템을 건드리기만 하면 됐다. 드론 몇 발이 보험 언더라이팅을 붕괴시켰고, 보험 붕괴가 선박 발길을 끊었다. 초기 충격은 작았으나 연쇄 효과는 거대했다 — 이것이 멱함수 법칙(Power Law)과 SOC가 결합된 구조다.

드론 1대 비용 ≈ $20,000. 하루 해협 봉쇄로 인한 글로벌 경제 손실 ≈ 수십억 달러. 이 비율은 시스템이 임계 상태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란은 '큰 무기'를 쓴 게 아니라, 임계 상태인 시스템의 지렛대 포인트를 정확히 눌렀다.


한국 주식시장: SOC 붕괴 이후의 섹터 재편성

모래더미가 무너지면, 남은 모래알들은 새로운 안정적 위치를 찾는다. 한국 증시에서 이 재배열은 극명하게 나타났다.

섹터 / 종목 방향 이유
방산 (LIG넥스원, 한화에어로, 한국항공우주) ▲ +20~30% (3월 초) 중동 국가 무기수요 급증, K-방산 수출 모멘텀
정유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계열) ▲ 정제마진 강세 원유 공급 감소 → 정제제품 프리미엄
조선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 탱커 발주 기대 우회항로 확대 → 탱커 수요 → 신조 발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 -10~12% (3월 9일) 외국인 유동성 회수, 에너지 비용 상승
항공 (대한항공, 아시아나) ▼ 항공유 직격 항공유 = 원유 직결, 운항비의 25%
내수 소비재 (현대백화점 등) ▼ -3~8% 물가 상승 → 소비 위축, 자금 이탈

이 배열은 무작위가 아니다. SOC 붕괴 이후 시스템이 재조직화할 때, 에너지 충격에 양성 노출된 섹터와 음성 노출된 섹터가 분리된다. 방산·정유·조선은 새로운 모래더미에서 '안정된 위치'를 찾은 모래알들이다.


지금 어디 있는가 — 3월 23일의 위치

현재 시스템은 Phase 3의 중반부에 있다. 완전봉쇄에서 선별적 봉쇄로의 이행이 진행 중이고, 이것은 새로운 임계점을 형성하고 있다. 주목할 변수는 세 가지다.

첫째, 이란의 심사제 완성도. IRGC가 운영하는 사전등록 시스템이 제도화될수록 봉쇄는 '레버리지 도구'로 고착된다. 완전해제보다 불완전한 상태가 이란에게는 더 유용하다. 이 시나리오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

둘째, 미국의 기뢰 제거 작전 성과. 미군이 현재까지 기뢰부설함 44척을 파괴했다고 밝혔으나, 기뢰 탐지·제거는 본질적으로 느린 작업이다. 해협이 "실제로 안전한지"와 "시장이 안전하다고 인식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셋째, 브렌트유 가격 경로. 현재 $107 수준은 공급충격에 비해 낮다는 평가도 있다. IEA가 경고한 월별 공급 부족이 현실화되면 4월에 $140 시나리오가 작동할 수 있다. 이 경우 코스피는 두 번째 충격을 받는다.


국내 주식 투자에의 함의: 모래더미의 새 경사각을 읽어라

Per Bak의 통찰은 예측보다 구조 인식에 있다. 모래더미가 무너진 후 새로운 임계점에서 다음 붕괴가 준비된다는 것을 아는 것. 지금 한국 시장에서 그 함의는 명확하다.

방산·조선은 새 임계점의 '안정된 노드'다. SOC 붕괴 이후 재조직화된 구조에서 이 섹터들은 에너지 위기가 지속되는 한 구조적 수혜를 받는다. 모멘텀 매매가 아니라 구조 매매로 접근해야 한다. 단, 조선의 경우 수주→매출 인식까지 2~3년의 리드타임을 감안해야 한다.

반도체는 새로운 모래더미에서 불안정한 위치다. AI 수요라는 자체 동력이 있지만, 에너지 비용 상승 + 원화 약세 + 외국인 수급 이탈이라는 3중 압력이 있다. 반등 시 매도 압력이 살아있다. 3월 18일 +7~8% 반등이 지속성이 있는지 주시해야 한다.

원화/달러 1,500선은 새로운 임계 파라미터다. 이 선이 고착화되면 외국인의 한국 시장 노출 비용이 높아진다. 환 헤지 비용을 포함한 실질 수익률 계산이 외국인의 수급을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SOC가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교훈을 기억하라: 새로운 임계점에서 시스템은 다시 자기조직화한다. 지금이 위기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안정기의 시작이다. 그 안정기가 얼마나 지속될지 — 다음 모래더미가 어느 수준에서 무너질지 — 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 구조를 아는 사람은 다음 눈사태가 오기 전에 어디에 서있을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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